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문단 편집) ====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과 평화 협상 ==== 그런데 2011년 5월, 전쟁의 원인이었던 [[오사마 빈 라덴]]이 파키스탄에 숨어 있다가 CIA에게 발각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미국은 전쟁의 명분이던 빈 라덴을 처단하는 데 성공했으므로 아프간에서 발을 뺄 기회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 아프간에서 철군한다면 아프간은 [[중앙아시아]]의 [[소말리아]]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다시 탈레반이 권력을 잡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탈레반]]이 그나마 1996년에서 2001년 집권 당시의 최소한의 합리성조차 상실한 집단임을 고려하면 그 여파는 이웃 국가들, 특히 [[핵무기|핵]]을 보유한 파키스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기에 미국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는 평가가 존재한다. 이후에도 전투는 계속되어 2011년 8월 6일 새벽,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의 공격으로 미군 31명이 탄 치누크 헬리콥터가 격추되어 타고있던 38명(아프간 정부군 포함)이 몰살당했다. 이 31명 중 대다수가 네이비 씰 내에서도 최고의 정예인 [[미합중국 해군특수전개발단|DEVGRU]] 소속, 바로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그 부대다. 하필이면 이런 기막힌 우연 때문에 빈 라덴의 복수라는 비유를 하기도 한다. 하루만에 31명이 사망한 것도 운이 없지만, 미군 최고의 특수전 부대원 수십 명이 한번에 사라져버린 것. 일반 미군 사망 수백 명보다 훨씬 뼈아픈 손실이며 '''미 특수전 사상 최악의 대참사'''로 기록되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108072131325|그러나 빈 라덴 사살 작전에 참가한 부대원은 한 명도 없다고 발표되었다.]] 다만 이는 미군의 사기를 고려한 페이크일 수도 있다. 이런 류의 의도적인 발표는 군사관련 발표에서 흔한 것이다. 그리고 빈 라덴 사살 작전에 참가한 부대원이 있건 없건 같은 최정예부대 소속의 부대원들의 몰살은 동일하게 뼈아프다. 이 때문에 아프간 정부군에 슬슬 전쟁 주도권을 넘기려던 미국에서 아직 철군하기에 위험하다는 의견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군이 있든 없든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은 없다. 2012년 4월에는 카불 곳곳에서 동시 다발 테러가 일어나 아프간 정부군 29명의 사상자를 냈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긴급 피신했고 미군도 출동했지만 거리 곳곳에서 사람들이 미군에게 돌을 던지는 통에 미군에 대한 인식만 최악이라는 게 다시 한번 드러났다. [[알 카에다]]는 모두 36명이 전사했지만 충분히 효과를 거두었다는 분석이다. 반미의식이 확인되었고 정부군은 우왕좌왕했으며 미군은 사람들의 돌팔매질이나 당하는 바람에 있어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미국은 발빼기를 위해 계속 탈레반과 협상을 타진했고 탈레반은 이를 수락했다. 탈레반과 미국은 2013년 6월부터 전쟁 발발 12년 만에 [[카타르]]에서 평화 협상을 시작했다. 여기서 배제된 현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반발했지만 이미 신뢰를 잃은 집단인데다 어차피 망할 자들을 고려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는지 미국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 탈레반과 협상을 하고 있다. 탈레반은 관타나모 기지에 수감된 포로와 자신이 확보하고 있는 미군 포로와의 교환을 주장한다고 한다. 어차피 현 상황에서 아쉬운 쪽은 미국이고 이런 경우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가는 [[베트남 전쟁|1973년]]과 [[소련 아프간 전쟁|1989년]]에 이미 증명된 만큼 탈레반이 정말로 답이 없는 수준의 만행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 결국 탈레반에 유리한 방향으로 처리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처음에 양측 입장차이가 커서 협상은 얼마 안 가 결렬되었지만, 미국도 어쩔 수 없기 때문에 다시 재개되었다. 2014년 6월 1일, 결국 2009년에 탈레반에 잡힌 유일한 미군 포로 보위 버그달(Bowe Bergdahl) 병장은 관타나모에 수감되어 있던 탈레반 간부 5명과 교환되어 풀려났다. 탈레반 포로 다섯 명과 교환되는 내용은 2014년 말에 방송되었다. 공화당은 의회 허가없이 테러리스트들을 풀어줬다며 난리지만, 일단 5년간 억류생활을 하던 자국 병사가 돌아온건 미국으로선 환영할만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후에 버그달 병장은 전투 중 포로로 붙잡힌게 아니라 기지를 무단이탈 하였다가 억류되었고, 그를 찾겠다고 나선 미군들이 몇 명이나 탈레반과 싸우다 죽었다는 게 뒤늦게 드러나는 반전이 있었다. 친지에 보낸 마지막 이메일에서 군생활에 대한 환멸감을 썼는데, 이 때문에 탈영 혐의를 받게 된 것. 그래서 환영 행사가 취소되는 등 내부적인 분위기가 안 좋은 상태. 일단 미군측은 버그달 병장이 5년간이나 사실상의 감옥 생활을 한 만큼 그걸로 벌은 충분히 받았다며 환영은 안 하더라도 처벌까지는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결국 조사 결과 버그달 병장은 단순 외출 중 피랍된 것으로 판단되어 다시 정상적으로 현역에 복귀하였지만, 2015년 3월에 적 앞에서 겁을 먹었고 탈영을 저질렀다는 죄목으로 군사법원에 기소되었다. 더욱이 그의 생환에 깊이 관여했던 [[마크 밀리]] 장군이 2015년 5월에 차기 [[육군참모총장]]에 내정되자 논란이 재점화되는 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